Run

hanol.egloos.com

포토로그 마이가든



건조한 시선으로 - 건축학 개론 movie



처음 건축학 개론의 예고편을 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있었습니다. 

'와, 교묘하다.'

절묘한 것도 아니고 교묘하다.란 표현을 쓴 이유는 이 영화가 철저하고 세밀한 기획하에 만들어졌다는 혐의가 한 가득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철저한 기획하에 만들어지지 않는 영화란 없겠죠. 하지만 이 영화만큼 그런 느낌이 확 느껴졌던 영화는... 제 기억에는 없었던 것 같네요. 

마케팅적 관점에서 이 영화는 아주 능수능란하게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타깃은 물론 30-40대 남성이죠. 과거의 첫사랑과 재회한다는 설정, 그리고 과거의 추억들을 한 가득 상기시키는 소품과 음악들이 2시간 동안 도처에서 사정없이 기억을 저격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리 잘 봐줘도 이야기를 참신하다고 말하긴 힘들어요. 사실, 이 영화를 보며 눈을 크게 뜨게 하는 건 이야기 그 자체 보다는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와 그것을 녹이는 도구와 방식에 있습니다. 

'과거'를 추억하는 영화들은 이전에도 넘쳐났었죠. 품행제로, 클래식, 말죽거리 잔혹사, 친구 같은 영화들은 이 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흥행을 이끌었던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보다 건축학 개론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영화가 선택한 시점에 있죠. 바로 지금까지의 영화들이 다루지 않았던 90년대라는 '시점'입니다.

사실 그동안 90년대라는 시점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애매하죠. 추억을 상기시키려면 비주얼이 극도로 대비되는 시대를 상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90년대는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이 멈추고 IMF란 시련에 빠지고, 그리고 동시에 그걸 극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80년대 - 90년대 사이의 기시감과 90년대 - 2000년대 사이의 기시감이 같은 수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 점들이 90년대를 '추억'이란 소재로 활용한 영화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랫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전 이 영화가 말하는 세대에서 살짝 벗어나 있습니다. '기억의 습작'이 나올 적에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전 영화를 봄에 있어 전혀 주저함 없이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음악들이 오늘날에 와서도 유효한 힘을 쥐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한국 대중음악의 최고 황금기가 이 때였잖아요. '기억의 습작'은 단순히 영화 내에서의 감정선 역할만을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주옥같은 음악들에 젖었던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최면유도제인 거죠.

이 음악의 존재 말고도 이 영화는 90년대와 2000년대 사이의 약한 기시감을 각종 오브제와 배우들의 배치를 통해 영리하게 풀어냅니다. 당시의 CDP와 삐삐, GUESS, 386컴퓨터, 헤어스타일 같은 요소들은 뭐 당연한 활용이라고 생각할 법도 해요. 하지만 20대 역할의 배우들과 30대 역할의 배우를 분리시키는 전략과 앞서 언급한 추억 돋는 요소들이 결합하자 기존의 '클래식'류의 기시감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기시감이 생겨버립니다. 그저 옛날 세트장에 의존했던 예전 영화들의 기시감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죠. 실제로도 그렇잖아요. 20살의 나와 35의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요. 전후가 전혀 다른 배우들의 모습은 어쩌면 20살 그때와 너무도 달라지고 훼손되어버린 순수를 의미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눈에 띄는 의도는 주연 남,녀 배우의 캐스팅에 있습니다. 한가인은 뭐 재론의 여지가 없는 대표적인 미인이죠. 하지만 엄태웅은 머리 속에 물음표가 생기는 캐스팅입니다. 한가인과 엄태웅이 파트너로 나온다? 이런 얘기는 좀 그렇긴 하지만 비주얼로만 따져봤을 때, 엄태웅이 레벨 하나 정도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 이런 캐스팅이 남성들의 공감을 훨씬 배가시키는 촉매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남자들에게 '첫사랑'이란 마치 만화 속 여주인공같은 존재입니다. 많은 남자들의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공주님(?)으로 남아있죠.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한가인급의 미인인 겁니다. 게다가 돈 많은 이혼녀라는 속물 냄새나는 설정도 빠져들기 좋은 설정이죠. 그리고 남자배우치고 비교적 수수하고 털털한 이미지의 엄태웅은 남성 관객들이 자신을 투영시키기에 큰 무리가 없는 캐스팅입니다. 실제로 나오는 모습도 야근과 삶과 미래에 쩔어있는 평범한 회사원이기도 하구요. 만약 회사원 엄태웅 대신 사업가 정우성이 나왔으면 어땠을까요? 아마, 영화에 대한 해석이나 관람 포인트, 공감 수준이 전혀 달라졌을 겁니다. 아마 평범한 보통의 멜로영화가 되어버렸을 거에요.

그런데, 30대 역할의 배우들에 대한 이런 비중 차이에 비해 20대 역할의 배우들은 왠일인지 그렇게 갭이 크지 않습니다. 수지도 미인이지만 이제훈도 그에 못지 않죠. 20대 역할 배우들의 비교적 균등한 비중은 우리가 추억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20살의 추억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죠. 아무리 지독한 경험이라도 결국 세월은 그 때를 미화하고야 맙니다. 실제 그 때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든, 그때의 추억과 그때의 나는 영원히 아름다운 청춘이었던 거죠. 20대 역할의 두 배우가 모두 아름답고 건강한 미남 미녀인 이유는 "그 때의 추억, 아름다웠잖아요." 라고 끊임없이 최면을 걸기 위한 연출자의 의도인 거죠. 그리고 그 때의 시대적 배경에 쉽게 빠져들지 못할 10대 20대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미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엄태웅과 한가인이 20살 분장을 하고 나온들 어떤 20대가 거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을까요.

건축학 개론에 나오는 모든 요소들(나오는 음악에서부터, 캐스팅 전략, 오브제 활용, 배우의 비중 조절 등등)은 30-40대 남자들의 머리속을 확 쥐어잡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굉장히 컨셉추얼하고 엄청나게 영리한 영화에요. 여러 세대의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고, 각 세대들에게 각기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죠. 누군가는 수지에게 공감하고 누군가는 제훈에게, 누군가는 한가인에게, 누군가는 엄태웅에게 공감할 겁니다. 단순한 첫사랑 영화라고 치부하기에는 이 영화에 들어간 치밀한 노력과 의도들이 아깝다는 생각조차 들어요. 이런 균형을 맞추어서 멋진 작품 하나를 만들기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힘든 거에요. 오만가지 의도를 다 쑤셔넣고도 이렇게 맛있는 영화를 만든 제작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전히 영화의 이성적인 부분만 따져도 손에 꼽을 모범사례로 기억에 오래 남을 듯 싶어요. :)






크로니클 movie



초능력을 가진 자가 모두 영웅은 아니다.
이 카피와 회색빛 포스터로 대충의 내용을 짐작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왕따' 수준의 학생과 그 친구 2명이 미지의 힘과 조우하고, 그 힘을 컨트롤하고, 이윽고 폭주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초능력을 소재로 했던 기존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각을 달리하는 구성이지만 예상가능한 진로를 향해간다는 점, 그리고 그 능력 또한 예상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들의 초능력이 좀 더 다양한 변주로 나타났으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죠. 

1인칭 시점을 시도했다는 점 또한 그렇게 점수를 따기 힘든 요소가 아닐까 싶어요. 클로버필드, 디스트릭스9을 거치며 많은 대중들에게 익숙해져버린 기법이라는 점도 있지만 이 기법과 영화의 구성이 기가막히게 떨어진다? 그건 또 아니었거든요. 주인공이 '기록'에 집착하게 된 논리 또한 빈약하구요. 

사실 앞에서 말한 아쉬운 점들은 영화의 단점이라기 보다는 옥의 티를 찾는다는 의미가 더 큽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수작이라고 말해줄만해요. 저예산 영화라지만 CG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고 몰입감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1시간 반이라는 분량과 스토리의 완급조절도 훌륭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내가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면'이라니. 이런 상상이 재미없을리가 없잖아요. 게다가 기존 블록버스터의 화법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점, 원작이 없는 초능력 영화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구성과 이야기를 보여준 점은 충분히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오는 느낌은 그리 개운하지 않았어요. 영화에서 보여준 모든 갈등과 사건들이 어떤 의미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그저 이 모든것이 한때의 해프닝으로 그친다는 느낌이랄까요. 주인공의 내뿜었던 절망과 고통은 어디로 가 버린 걸까요. 그냥 엉성하게 영화가 덮여버린 느낌입니다. 1인칭 시점을 채택한 이상 뭔가 똑 떨어지는 결말이 나오긴 힘들었겠지만 그 점을 감안한다고 쳐도 결말은 좀 아쉬웠어요. 뭔가 한 단계 크게 점프할 수 있는 시점을 놓쳐버린 느낌이랄까요. 이런 결말의 아쉬움이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영화로 보이게하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라즈베리필드, 3월 music



라즈베리필드는 (광고에도 나온)'토요일 오후에'라는 곡으로 유명세를 타고있죠. 그래서 '달다구레한 그룹이구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듣기에 이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슬픔을 노래하고 있어요. 처음 소이의 보컬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던 건 조청의 맛이 아니라 인삼의 맛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링크에 걸린 '3월'이란 노래가 라즈베리필드의 색깔이라고, 감히 주장해봅니다. 달다구레하든, 씁쓰레하든, 어느 쪽이 진짜든, 좋은 곡과 좋은 보컬을 보여주고 있는 그룹이라고 생각해요. 정규앨범 준비중이라고 하던데. 기대하는 중입니다. :)   





1 2 3 4 5 6 7




알라딘TTB2

.aladdin_sidebar { margin: -43px 0 -21px -9px; }